동국대 미당연구소, 제2회 미당시 손글씨 대회 및 질마재 신화 50주년 기념 문학제 성료
최연소 6세부터 최고령 89세까지 60개 가족 204명 참여… 세대를 아우른 손글씨 대회
국립한국문학관 문정희 관장, 미당 회고부터 전통 공연까지
질마재 신화 50주년 기념 문학제 풍성

ABC뉴스=김들풀 기자 / 디지털 시대에 손글씨로 시의 숨결을 불러오는 특별한 행사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동국대학교 미당연구소가 고창군 미당시문학관과 공동 개최한 제2회 미당시 손글씨 대회가 뜨거운 호응 속에 막을 내렸다.

깊어 가는 가을, 한 줄의 시를 손으로 옮겨 적는 일은 마음을 적시는 또 하나의 시 쓰기다. 8월 1일부터 10월 15일까지 진행된 이번 대회에는 전국에서 775명의 참가자가 총 1,402편의 작품을 응모하며 미당 서정주 시인의 시를 따라 쓰고, 시의 숨결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심덕섭 고창군수와 관계자들이 시 읽는 가족상 최우수상 수상 가족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10명의 가족이 함께 참여해 19편의 작품을 제출한 유재희 씨 가족은 상금 100만 원이 적힌 상금패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동국대학교 미당연구소)
심덕섭 고창군수와 관계자들이 시 읽는 가족상 최우수상 수상 가족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10명의 가족이 함께 참여해 19편의 작품을 제출한 유재희 씨 가족은 상금 100만 원이 적힌 상금패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동국대학교 미당연구소)

할머니부터 손자까지, 펜 끝에 담긴 가족의 온기

이번 대회에서 가장 가슴 뭉클한 장면은 가족 부문이었다. 총 60팀 204명의 가족이 함께 모여 미당의 시를 골라 정성스럽게 옮겨 적었다. 최연소 참가자인 2019년생 어린이부터 최고령 참가자인 1936년생 어르신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손글씨가 종이 위에 펼쳐졌다.

조손 3대가 함께, 부녀가 함께, 모자가 함께, 부부가 함께, 자매가 함께, 다문화가정이 함께 펜을 들었다. 한 가족당 최다 참여 인원은 16명에 달했고, 가장 많은 작품을 응모한 가족은 19편의 시를 함께 썼다. 거실 한편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시를 고르고,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옮겨 적는 가족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시 읽는 가족상 최우수상은 2017년생 손자부터 1958년생 외할머니까지 10명의 가족이 함께 참여한 유재희 씨 가족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동천>,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등 19편의 작품을 제출하며 심사위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수상 가족에게는 상금 100만 원과 미당 시전집 전5권이 부상으로 증정됐다.

심사위원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 손자 손녀가 함께 모여 미당시를 고르고 옮겨 쓰는 과정을 떠올리며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전옥란 미당연구소 소장을 비롯해 김춘식 동국대 문과대학장, 박형준 교수, 이원영 교수, 휘민 전임연구원 등 5명이 심사에 참여했다.

미당시문학관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제2회 미당시 손글씨 대회 수상작들을 감상하고 있다. 총 1,402편의 응모작 중 엄선된 작품들이 액자에 담겨 전시되어 있다.  (사진=동국대학교 미당연구소)
미당시문학관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제2회 미당시 손글씨 대회 수상작들을 감상하고 있다. 총 1,402편의 응모작 중 엄선된 작품들이 액자에 담겨 전시되어 있다.  (사진=동국대학교 미당연구소)

학생들이 손으로 담아낸 미당의 시심

올해부터 신설된 학생부에는 동국대학교 총장상이 수여됐다. 학생부 최우수상은 러시아 유학생 도브갈류크 나탈리야 씨가 <신부>를 정성껏 써서 차지했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 학생이 미당의 시를 손글씨로 옮겨 적으며 한국 문학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낀 순간이었다.

우수상에는 김지우 씨가 쓴 <견우의 노래>와 박재윤 학생이 쓴 <국화 옆에서>가 선정됐다. 지도교사상은 한국외국어대학교 KEL학부 서효원 강사에게 돌아갔다. 학생들의 단정한 손글씨 속에 미당 문학의 향기가 스며들어 있었다.

윤재웅 동국대학교 총장이 2025 미당문학제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동국대학교 미당연구소가 고창군 미당시문학관과 공동 개최한 이번 행사에서 대학을 대표해 미당 문학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겼다.   (사진=동국대학교 미당연구소)
윤재웅 동국대학교 총장이 2025 미당문학제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동국대학교 미당연구소가 고창군 미당시문학관과 공동 개최한 이번 행사에서 대학을 대표해 미당 문학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겼다.   (사진=동국대학교 미당연구소)

미당 시전집 너머의 시까지, 참가자들의 깊은 시심

참가자들이 선택한 작품도 눈길을 끌었다. <국화 옆에서>, <푸르른 날>, <동천> 같은 미당의 대표시는 물론, 미당 시전집에도 수록되지 않은 미수록 시 <숨쉬는 손톱>까지 등장했다. 참가자들이 미당의 시 세계를 얼마나 깊이 있게 탐구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전옥란 소장은 서정주 시인의 아름다운 시를 정성스럽게 옮겨 쓰는 동안 가족의 마음이 하나로 이어졌길 바란다며, 기술이 언어를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손글씨는 인간의 마음을 전하는 가장 따뜻한 예술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시상식에서 심덕섭 고창군수가 수상자 가족에게 상장을 전달하며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동국대학교 미당연구소)
시상식에서 심덕섭 고창군수가 수상자 가족에게 상장을 전달하며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동국대학교 미당연구소)

심덕섭 군수 참석, 감동의 시상식 열려

제2회 미당시 손글씨 대회 시상식은 11월 1일 토요일 고창군 미당시문학관에서 열린 2025 미당문학제의 주요 행사로 진행됐다. 이날 시상식에는 심덕섭 고창군수가 참석해 수상자들에게 직접 상장과 상금을 수여하며 격려했다.

심덕섭 군수는 “전국에서 775명이나 되는 분들이 미당 서정주 시인의 시를 손으로 옮겨 쓰며 문학의 향기를 나눠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특히 3대가 함께 참여한 가족들의 모습에서 미당 문학이 세대를 이어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고창군이 미당의 고향으로서 앞으로도 미당 문학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계승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문정희 시인이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국립한국문학관 관장인 문 시인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미당 서정주 시인과의 인연과 문학적 교감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사진=동국대학교 미당연구소)
문정희 시인이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국립한국문학관 관장인 문 시인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미당 서정주 시인과의 인연과 문학적 교감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사진=동국대학교 미당연구소)

2025 미당문학제, 질마재 신화 50주년을 기리다

시상식에 이어 펼쳐진 2025 미당문학제는 질마재 신화 5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문학제는 문정희 시인의 특별강연 서정주 시인과 나로 그 막을 열었다. 현재 국립한국문학관 관장으로 재직 중인 문정희 시인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미당 서정주 시인과의 인연과 문학적 교감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한국 현대시의 거목이었던 미당의 인간적 면모와 시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는 청중들에게 미당 문학을 더욱 가까이 느끼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강연에 이어 질마재 신화 50주년 기념 특별공연이 다채롭게 펼쳐졌다. 첫 무대는 서도소리 무형유산 예능 보유자 박정욱 명창의 판소리 공연이었다. 박 명창은 미당의 대표작 <신부>를 판소리로 재해석해 구성진 가락에 담아냈다. 시집 가는 신부의 설렘과 두려움, 그리움이 소리꾼의 목청을 타고 흘러나왔다.

서도소리 무형유산 예능 보유자 박정욱 명창이 판소리 공연을 펼치고 있다. 박 명창은 미당의 대표작을 구성진 가락에 담아냈으며, 옆에서는 전통 북 반주가 함께 어우러져 미당 시의 깊은 정서를 전통 소리로 재해석했다.    (사진=동국대학교 미당연구소)
서도소리 무형유산 예능 보유자 박정욱 명창이 판소리 공연을 펼치고 있다. 박 명창은 미당의 대표작을 구성진 가락에 담아냈으며, 옆에서는 전통 북 반주가 함께 어우러져 미당 시의 깊은 정서를 전통 소리로 재해석했다.    (사진=동국대학교 미당연구소)

이어 <석녀 한물댁의 한숨>에서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여인의 한이, <상가수의 소리>에서는 삶의 애환이 구슬픈 소리로 관객들의 가슴을 적셨다. 전통 판소리와 현대시의 만남은 미당 문학의 또 다른 깊이를 느끼게 했다.

두 번째 무대는 가야금 명인 고 황병기 선생의 자제인 동국대학교 황수경 교수의 피아노 연주였다. 황 교수는 미당의 시 <신부>를 피아노 선율로 풀어냈다. 88개의 건반 위를 오가는 손끝에서 신부의 순결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음표가 되어 흘러나왔다.

이어 연주된 <그 애가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어왔을 때>는 한 소녀의 조심스러운 발걸음과 순수한 마음을 섬세한 피아노 선율로 표현해냈다. 시가 음악이 되고, 음악이 다시 시가 되는 순간이었다. 전통 음악가의 혼을 이어받은 연주자가 현대 악기로 한국 시인의 작품을 연주하는 모습은 전통과 현대, 문학과 음악의 아름다운 조화를 보여주었다.

마지막 무대는 전통연희컴퍼니 뢰연의 김주완 대표가 이끄는 사물놀이 공연이었다. 꽹과리, 징, 장구, 북의 네 가지 타악기가 만들어내는 신명 나는 가락이 미당시문학관을 가득 채웠다. 한국 전통 리듬의 흥과 멋이 관객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고, 공연장은 하나의 축제 마당이 되었다. 사물놀이의 열정적인 가락은 미당 문학이 가진 생명력과 역동성을 상징하는 듯했다.

동국대학교 황수경 교수의 피아노 연주와 전통 장구 연주가 어우러지는 특별 공연 장면. 가야금 명인 고 황병기 선생의 자제인 황 교수는 미당의 시를 피아노 선율로 풀어냈다.    (사진=동국대학교 미당연구소)
동국대학교 황수경 교수의 피아노 연주와 전통 장구 연주가 어우러지는 특별 공연 장면. 가야금 명인 고 황병기 선생의 자제인 황 교수는 미당의 시를 피아노 선율로 풀어냈다.    (사진=동국대학교 미당연구소)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문학의 향연

이날 문학제는 문학과 음악, 전통과 현대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종합 예술의 장이었다. 판소리의 구성진 가락, 피아노의 서정적 선율, 사물놀이의 신명 나는 리듬이 미당의 시를 다양한 예술 언어로 재해석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특히 질마재 신화 5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미당의 대표작들이 다양한 예술 장르로 재탄생한 것은 미당 문학의 생명력과 현대적 가치를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깊어가는 가을날 한 줄의 시를 손으로 옮겨 적으며 마음을 나눈 손글씨 대회와, 미당의 시를 소리와 음악으로 되살린 문학제는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의미 있는 행사로 기억될 것이다. 손끝에서 피어난 글자들이 가족의 마음을 잇고, 세대를 잇고, 미당의 시심을 이어가는 따뜻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들이 다시 소리가 되고 음악이 되어 관객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키워드

#미당시문학관 #서정주

 

저작권자 © ABC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