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guk University
이 가을에 오신 손님
이 가을에 오신 손님 이 세상에서
제일로 쓸쓸한 신발을 신고,
이 가을에 오신 손님 이 세상에서
한 송이 코스모스 얼굴이 되네.
이 가을에 오신 손님 이 세상에서
또다시 저 혼자서 떠나서 가네.
귀뚜리 울음소리 바지로 꿰고,
기러기 울음소리 웃옷을 입고,
흰 구름의 벙거지 머리에 쓰고
또 떠나네 또 떠나 떠나서 가네.
옛날에 도망쳐 온 흰말 한 마리
서성이며 헤매듯이 또 떠나가네.
-『노래』수록
※
이 가을에 오시는 손님은 누굴까? 가을이 빚어내는 서럽고도 고운 풍경을 가장 오래도록 깊이 들여다보고 그 기쁨과 아픔을 노래하는 사람은 아마도 시인일 것이다. 나는 ‘이 가을에 오신 손님’으로 미당 서정주 시인을 모신다.
미당이 70세에 펴낸 제11시집 『노래』(정음문화사,1984)에 수록된 「이 가을에 오신 손님」이라는 시는 2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의 다른 시들에 비해 형식미가 매우 정제되어 있다. 6행으로 된 각 연의 동일한 길이와 3음보의 동일한 각 시행들 그리고 앞과 뒤의 의미가 대응되면서도 점층적으로 확산되는 시의 구조가 한국 가곡으로 부르면 딱 그만이겠다. 서럽고도 고운 우리의 노래가 되겠다.귀뚜리 울음소리 바지로 꿰고,/기러기 울음소리 웃옷을 입고,/흰 구름의 벙거지 머리에 쓰고” “한 송이 코스모스 얼굴”로 “이 세상에서/제일로 쓸쓸한 신발을 신고,” “또 떠나네 또 떠나 떠나서 가네.”의 주인공은 그 누굴까? 그리고 “서성이며 헤매이듯이 또 떠나가”려는 “옛날에 도망쳐온 흰말 한 마리”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승에서의 삶이 끝날 때까지 언어를 손에서 놓지 않고 한 평생 이 땅의 서정시라는 농사를 지어온 ‘80소년 떠돌이’ 미당 자신이 아닐까.
우리들 앞으로 걸어오는 저 가을, 미당 서정주 선생을 가을의 손님으로 모시고 와서 그의 노래를 들어보면 어떨까? 풍성한 가을맞이가 안 되겠나.
이종암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