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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촉도

등록일 2025-03-21 작성자 관리자 조회 942

 

귀촉도

 

눈물 아롱 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 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신이나 삼어 줄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혀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을로 가신 님아

 

* 육날 메투리는 신 중에서는 으뜸인 메투리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조선의 신발이었느니라. 귀촉도는 항용 우리들이 두견이라고도 하고 솥작새라고도 하고 접동새라고도 하고 자규라고도 하는 새가, 귀촉도…… 귀촉도…… 그런 발음으로 우는 것이라고 지하에 돌아간 우리들의 조상 때부터 들어 온 데서 생긴 말씀이니라.

-귀촉도(1948) 수록

 

이 시를 가만히 읊조리다 보면, 우리는 언어로 만들어진 황홀한 환상의 공간을 체험하게 된다. 7·5조의 운율과 우리말의 말맛을 살려서 이처럼 완벽한 언어 구조물을 만들 수 있는 시인은 서정주 이외에 달리 없을 것이다. 그래서 미당은 ‘부족 방언의 마술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거의 모든 좋은 시가 다 그러하겠지만, 미당의 시는 번역할 수 없는 부분이 아주 크다. 우리말에 대한 깊은 감각을 지닌 자가 아니라면 미당의 시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을 것이다.

이남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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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의 「진달래꽃」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이별을 전제로 한 사랑 노래라면 미당의 「귀촉도」는 “다시 오진 못하는” 기왕의 이별 위에 애틋한 그리움을 녹여 낸 사랑 노래다. 우리말을 이렇게 자유자재로 부리면서 하늘이 내릴 법한 시를 쓰려면 어떤 경지에 올라야 할까. 미당이 이 시를 처음 발표한 나이가 스물여섯 청년이었으니 가히 ‘타고난 시인’이요 ‘천의무봉’이라 할 수밖에. 

고두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