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guk University
나그네의 꽃다발
내 어느 해던가 적적하여 못 견디어서
나그네 되여 호을로 산골을 헤매다가
스스로워 꺾어 모은 한 옹큼의 꽃다발
그 꽃다발을 나는
어느 이름 모를 길가의 아이에게 주었느니.
그 이름 모를 길가의 아이는
지금쯤은 얼마나 커서
제 적적해 따 모은 꽃다발을
또 어떤 아이에게 전해 주고 있는가?
그리고 몇십 년 뒤
이 꽃다발의 선사는 또 한 다리를 건네어서
내가 못 본 또 어떤 아이에게 전해질 것인가?
그리하여
천 년이나 천오백 년이 지낸 어느 날에도
비 오다가 개이는 산 변두리나
막막한 벌판의 해 어스럼을
새 나그네의 손에는 여전히 꽃다발이 쥐이고
그걸 받을 아이는 오고 있을 것인가?
-『동천』(1968) 수록
※
미당의 시를 읽을 때는 머릿속에 불이 켜진다. 혈색이 돈다. 미당은 숙명으로 날것을 문다. 매서운 눈빛으로 토하듯 써내려 간다. 시력詩歷만으로 시대를 호령했던 호랑이, 미당은 그런 시인이다. 미당은 혈穴이다.
「나그네의 꽃다발」은 인류의 영혼을 순환시킨다. 일체의 억제를 풀어 경계를 없애고 혼란을 잠재운다. 지상의 아주 작은 것에서 온기를 갈구하고 희망하도록 직조된 이 시는 다음 세대에게 꼭 쥐어 준 편지다. 저 장구한 외침은 흔들림이 없다. 이 꽃다발을 영속의 시간 동안 건네주고 건네받는다면 앞으로 전쟁도 그보다 더한 싸움도 없을 것이다. 적어도 천 년 동안에는.
이병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