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guk University
무의 의미
이것은 꽃나무를 잊어버린 일이다.
그 제각祭閣 앞의 꽃나무는 꽃이 진 뒤에도 둥치만은 남어
그 우에 꽃이 있던 터전을 가지고 있더니
인제는 아조 고갈해 문드러져 버렸는지
혹은 누가 가져갔는지,
아조 뿌리채 잊어버린 일이다.
어떻게 헐까.
이 꽃나무는 시방 어데 가서 있는가.
그러고 그 씨들은 또 누구누구가 받어다가 심었는가.
그래 어디어디 몇 집에서 피어 있는가?
지난번 비 오는 날에도
나는 그 씨들 간 데를 물어 떠나려 했으나 뒤로 미루고 말았다.
낱낱이 그 씨들 간 데를 하나투 빼지 않고 물어 가려던 것을 미루고 말았다.
그러기에 이것은 또 미루는 일이다.
그 꽃씨들이 간 곳을 사람들은 또 낱낱이 다 외고나 있을까?
아마 다 잊어버렸을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것은 외고 있지도 못하는 일.
이것은 이렇게 꽃나무를 잊어버린 일이다.
-『동천』(1968) 수록
※
얼마 전 한 사람을 떠나보냈다. 도시 외곽 화장장에서 곱게 갈린 그의 몸을 안고 산으로 향하던 시간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얼마 뒤 「무의 의미」를 읽었다. 미당의 여러 훌륭한 시편들 가운데 나는 왜 하필 이 시를 택했던 것일까. "제각祭閣 앞의 꽃나무"라니...... 이토록 아픈 시를, 제목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당분간 나는 이 시를 읽기 위해 명치에 한껏 힘을 주어야 할 것이다.
이 시에서 내가 가장 애정하는 대목은 바로 제목이다. "무의 의미"라는 말. 무의 의미, 무의 의미...... 텅 빈 후에도 어떤 의미가, 가치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해 주는 것처럼. 스산한 바람이 속을 할퀴고 지날 때마다 나는 주문처럼 이 네 음절을 곱씹게 될 것이다. 비어 있으면서 동시에 가득 찬 무언가를 그리며.
박소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