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시문학관
Dongguk University
가을비 소리
단풍에 가을비 내리는 소리
늙고 병든 가슴에 울리는구나.
뼉다귀 속까지 울리는구나.
저승에 계신 아버지 생각하며
내가 듣고 있는 가을비 소리.
손톱이 나와 비슷하게 생겼던
아버지 귀신과 둘이서 듣는
단풍에 가을비 가을비 소리!
-『늙은 떠돌이의 시』(1993) 수록
※
무슨 국어가 이렇게 힘이 셀까. 아버지 걱정만 끼쳐드렸던 불효자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가을비 내리는 소리가 늙고 병든 가슴은 물론 뼉다귀 속까지 울린단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 간절하다.
아들도 이미 많이 늙었다. 일흔일곱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50대 후반의 아들 같고, 살아 있는 아들이 팔순 바라보는 아버지 같다. 단풍에 가을비 내리는 소리를 둘이서만 듣는단다. 시심에 몰입하니 사람과 귀신이 나란히 서 있는 게 보인다. 이런 시를 굳이 설명해야 하나. 온몸, 온 마음으로 느끼면 된다.
윤재웅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