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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포우중

등록일 2026-07-20 작성자 관리자 조회 320

 

격포우중格浦雨中

 

여름 해수욕이면
쏘내기 퍼붓는 해 어스럼,
떠돌이 창녀 시인 황진이의 슬픈 사타구니 같은
변산 격포로나 한번 와 보게.

자네는 불가불
수묵으로 쓴 싯줄이라야겠지.
바다의 짠 소금 물결만으로는 도저히 안 되어
벼락 우는 쏘내기도 맞어야 하는
자네는 아무래도 굵직한 먹글씨로 쓴
싯줄이라야겠지.

그렇지만 자네 유랑의 길가에서 만난
사련邪戀 남녀의 두어 쌍,
또 그런 소질의 손톱의 반달 좋은 처녀 하나쯤을
붉은 채송화 떼 데불듯 거느리고 와
이 뇌성 취우의 바다에 흩뿌리는 것은
더욱 좋겠네.

짓이기어져 짓이기어져 사람들은 결국
쏘내기 오는 바다에
한 줄 굵직한 수묵 글씨의 싯줄이라야 한다는 것을
이 세상의 모든 채송화들에게
예행연습 시켜야지.

그런 용묵 냄새 나는 든든한 웃음소리가
제 배 창자에서
터져 나오게 해 주어야지.

-떠돌이의 시(1976) 수록

 

미당 선생이 우리의 상황을 상징하기 위하여 즐겨 쓰는 상징은 비 오는 때이다. 그러나 비가 온다는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쏘내기 오는 바다에/ 한 줄 굵직한 수묵 글씨의 싯줄”처럼 있어야 한다. 비 오는 바다에 쓴 수묵의 글씨, 이것이 곧 씻겨져 버릴 부질없는 물건일는지는 모르지만, 사람은 그의 의지 하나만으로도 이런 부질없는 짓을 반복하여야 한다.

김우창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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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에는 가슴 밑바닥에서 터져 나오는 외침이 없다고 어떤 시인이 개탄했다. 외침은 광고 카피 속에서, 감격은 선거 연설 속에서 반복 재생산되는 싸구려 상품일 뿐이다. 그러나 해 저무는 변산반도 격포 바닷가 쏘내기 속에서 경음, 파열음으로 빗겨 퍼붓는 이 시커먼 먹글씨 한국어의 절규는 어떤가? 횟집과 단란주점과 노래방만 즐비한 그런 격포가 아니라 뇌성취우雷聲驟雨의 외침이 해방시켜 주는 시의 격포를 한 방 쏘고 싶다.

김화영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