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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의 말씀

등록일 2026-08-10 작성자 관리자 조회 9

 

선덕여왕의 말씀

 

짐의 무덤은 푸른 영 위의 욕계 제2천.
피 예 있으니, 피 예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구름 엉기고, 비 터 잡는 데─ 그런 하늘 속.

피 예 있으니, 피 예 있으니,
너무들 인색치 말고
있는 사람은 병약자한테 시량도 더러 노느고
홀어미 홀아비들도 더러 찾아 위로코,
첨성대 위엔 첨성대 위엔 그중 실한 사내를 놔라.

살의 일로써 살의 일로써 미친 사내에게는
살 닿는 것 중 그중 빛나는 황금 팔찌를 그 가슴 위에,
그래도 그 어지러운 불이 다스려지지 않거든
다스리는 노래는 바다 넘어서 하늘 끝까지.

하지만 사랑이거든
그것이 참말로 사랑이거든
서라벌 천 년의 지혜가 가꾼 국법보다도 국법의 불보다도
늘 항상 더 타고 있거라.

짐의 무덤은 푸른 영 위의 욕계 제2천.
피 예 있으니, 피 예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구름 엉기고, 비 터 잡는 데─ 그런 하늘 속.

내 못 떠난다.

 

* 선덕여왕은 지귀志鬼라는 자의 여왕에 대한 짝사랑을 위로해, 그 누워 자는 데 가까이 가, 가슴에 그의 팔찌를 벗어 놓은 일이 있다.

-신라초(1961) 수록

 

종종 시 쓰는 일이 힘에 부칠 때, 미당의 시를 펼쳐 읽고는 한다. 「선덕여왕의 말씀」은 미당의 절창이라든가, 널리 알려진 시는 아니지만 겹벚꽃처럼 중심-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이야기(설화)의 무한성과 시의 영원성이 뒤섞인 아름다움.

서정주가 발견한 「지귀설화」의 아름다움은 이런 것이다. “살[육체]의 일로써” 사랑이 전이되고 번질 수 있다는 것. 가장 존귀한 자의 살에 닿았던 빛나는 사물이, 가장 비천한 광인의 가슴에 닿는다. 바로 이때 “국법보다도” 귀한 개념(사랑)이 탄생한다. 사랑과 불은 접촉에서 탄생한다. 작은 부싯돌의 마찰이 세계를 삼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선덕여왕의 말씀”이다. 자신은 “구름 엉기고, 비 터 잡는 데”에 있을 터이니 언제든 걱정 말고 “늘 항상 더 타고 있거라” 다독이는 말.

고명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