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guk University
다섯 살 때
내가 고독한 자의 맛에 길든 건 다섯 살 때부터다.
부모가 웬일인지 나만 혼자 집에 떼놓고 온종일을 없던 날, 마루에 걸터앉아 두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가 다듬잇돌을 베고 든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것은 맨 처음으로 어느 빠지기 싫은 바닷물에 나를 끄집어들이듯 이끌고 갔다. 그 바닷속에서는, 쑥국새라든가—어머니한테서 이름만 들은 형체도 모를 새가 안으로 안으로 안으로 초파일 연등밤의 초록 등불 수효를 늘여 가듯 울음을 늘여 가면서, 침몰해 가는 내 주위와 밑바닥에서 이것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뛰어내려서 나는 사립문 밖 개울물 가에 와 섰다. 아까 빠져 있던 가위눌림이 얄따라이 흑흑 소리를 내며, 여뀌풀 밑 물거울에 비쳐 잔잔해지면서, 거기 떠 가는 얇은 솜구름이 또 정월 열나흗날 밤에 어머니가 해 입히는 종이적삼 모양으로 등짝에 가슴패기에 선선하게 닿아 오기 비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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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아이가 사립문 밖에서 만난 최초의 물거울, 미당의 시는 그곳에서 시작된다. 다섯 살은 “고독한 자의 맛”을 알기엔 어린 나이지만, 고독한 자만이 예술가가 된다. 이때 경험한 고독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미당은 팔순이 넘어서도 그날을 떠올리며 “어린 집지기의 자유”(「어린 집지기의 구름」)를 이야기했다. 그날 다섯 살 아이가 바라본 풍경은 스물세 살 청년의 가슴에서 “이마 우에 얹힌 시의 이슬”(「자화상」)로 태어났으니, 미당未堂이라는 ‘영원한 아이’의 신화가 움튼 곳 또한 그 개울가라 할 만하다.
휘민 시인·미당연구소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