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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등록일 2024-09-09 작성자 관리자 조회 56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가슴속에 사랑이 밀물처럼 차오를 땐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 사랑이 빠져나간 뒤라야 우리는 알게 된다. 이별의 정한이 곧 사랑의 크기였음을. 반복과 변주를 통해 미당은 3연의 “연꽃”이 4연에서 “엊그제”로, 3연의 “바람 아니라”가 4연에서 “한두 철 전”으로 뒤바뀌는 마법을 보여 준다.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과 ‘만나고 가는 바람’ 사이에 가로놓인 인연해탈因緣解脫의 경지는 또 어떠한가. 

 

그리움과 섭섭함은 대상과의 거리에서 생겨나고 사랑은 필연적으로 시간과 열정을 담보로 한다. 그러니 지금은 이별의 눈치 보지 말고 연꽃 ‘만나는’ 바람같이 한껏 흔들려 봐도 좋겠다. 이별의 정한을 사붓사붓 노래한 이 시가 오히려 우리의 연애 세포를 살랑살랑 건드리고 있지 않은가. 만남이 없는데 이별이 있겠는가. 색色이 없다면 공空은 영원한 미지일 뿐이다. 

휘민 시인·미당연구소 전임연구원